낙동강 지류인 금호강변에 자리잡은 영천의 조양각
고려말에 명원루로 창건되었고
남향인 강변쪽으로는 서세루. 배면엔 조양각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밀양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와 함께 영남의 3대누각으로 알려졌고
안동의 영호루,울산의 태화루,김천의 연자루,양산의 쌍벽루를 포함해서는 영남7루로 불려진다.
원형이었던 명원루에서 10여차례 중건,중수,중창을 거듭하며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데
울타리를 치고 자물쇠를 걸어 두는 건 썩 좋은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남루와 촉석루는 완전 개방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개방하면 탐방객들의 양말로 바닥을 깨끗이 닦아줄 수도 있을텐데....
마루 바닥에 쌓인 먼지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강변쪽으로 걸린 서세루의 현판이 보인다.
조양각 동편으로 자리잡은 영천 문화원
조양각 방문객이 이용할 유일한 화장실이 문화원 건물 안쪽인데 찾기가 미로를 따라가는 느낌
명색이 영천을 대표하는 문화원인데 청결 상태가 좀 더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
조선통신사의 기착점으로
마상연(馬上宴),전별연등 갖가지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다한다.
황성옛터의 작사가인 왕평이 영천 출신이라 이곳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왕평의 이름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저런 비문을 썼을까?
금호강 중보
주남교
일제 강점기 때 건립된 교랑이 있었는데 오래 전 허물고 다시 세웠다.
영천에는 서문통과 구 읍사무소 앞에 오거리가 두 군데 있다.
대구,경산,경주,포항,군위,의성,청송으로 통하는 교통 요충지임을 알려주는 근거다.
개략적인 거리 환산법으로 경주,포항,대구를 80리로 규정하고
이 거리는 말을 타고 하루를 갈 수 있는 이동거리였다 한다.
고향을 물어 영천이라 하면 외지인들은 첫마디가 말(馬)거시기를 들먹이곤 했는데
영천에 그만큼 오고가는 말들이 많았고 지나치는 암말들의 자태에 수말들의 춘정이 고스란히 노출되었으니...
흥미꺼리를 본 사람들의 기억이 오래도록 전파되어 후세에 까지 전해진 게 아닌가 한다.
나의 고향은 자랑스런 영천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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