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에는 현판이 걸리지 않았다. 새로이 건립한 듯
개울 건너에서 바라 본 절집은 신라 고찰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가람으로 보이는데 최근 손 댄 흔적이 많다.
삼성각 앞에 포대화상을 앉혔는데 그 옆에 기증한 사람의 이름이 석판에 새겨져 있다.
눈에 거슬린다.
나한전이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보이는데 연대를 알 수 없다.
서까래를 봐서는 최근 중수한 것도 같은데..
금불당과 나한전 앞에 선 3층석탑 1기가 신라 고찰임을 알려준다.
석등의 하대석으로 보이는데 위에 얹힌 돌과는 왠지 조화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간지주도 있고
대웅전의 꽃문양 문살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봉덕사(奉德寺)였다고 한다. 그 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의 발발로 전국토가 왜구의 발아래 유린되자,
당시 사명 대사(四溟大師)가 1,500여 명의 승병(僧兵)을 이끌고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자 인근 각지에서 의병이 숲[義林]처럼 모여들었다고 하여 절의 이름을 지금의 의림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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