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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 ./♡ 사는 동안

덕이

by 삼매* 2018. 5. 12.







1980년 봄

같은 동리 강 건너 마을에 탄광에서 일하다 하반신 마비로 고향에 돌아와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형이 있었다.

바둑과 고스톱이 능했는데 늘 손아래 사람과 어울려 놀아주곤 했다.

어느날 옆집 덕이와 그 형네집에 놀러갔는데 요즘은 펜팔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며 종이상자에 담긴 편지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맘에 드는 거 아무거나 골라 가서 펜팔 해보라고 했다

형의 명령대로 각자 한 통의 편지를 들고 와서 있는말 없는사실 꾸며대어 편지를 날렸는데 답장이 왔다.

덕이한테 뽀로로 달려가서 자랑을 했다. 덕이는 답장이 안 왔다네

답장 왔던 그 아가씨(?)랑은 몇 번의 편지를 더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한달쯤 지났을까?

덕이가  펜팔연애를 시작했다며 자랑질을 해왔다


나는 당시 향토를 철통같이 지켜내던 특수군단 소속의 일원으로

투철한 사명감에 불 타는 똥방위로 근무할 시절이었는데(웃지 마세요-,.-)

펜팔이고 나발이고 맨날 목총으로 엉덩이에 피멍이 가실날 없이 얻어터지다 보니 정서가 사막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던 터라

덕이의 펜팔에 관심 줄 여유가 없었다


담 하나 사이에 둔 이웃이라 니집 내집 구분없이 살았고 식구보다 가까운 불알 친구였다

덕이의 편지는 작은 종이상자를 가득 채울만큼 쌓여갔고

유치하기 짝이 없던 문장들을 꺼내 읽으며 키득거렸지만 덕이는 정말 행복해 했다.

나중에 밝힌 덕이 이야기에 의하면 답장이 없던 그 아가씨에 실망하여 휠체어 형에게 다시 가서 편지 하나를 골라와서 성공했다는 거였다


덕이 아부지는 외지에서 살다가 큰과수원댁 머슴살이로 들어와서 정착한 사람이었는데

완고한 성격으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아내와 전제 결혼을 하고도 절대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던 고집쟁이었다

술을 좋아했고 불뚝골이 대단했던...

어느날 덕이 방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지게 작대기로 내리칠 듯 " 이눔새끼들 이 바쁜 반각에 방에서 빠이롱을 시루코 있다니~"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반각이 무슨말인지 모른다. 농사철이라는 말로 이해함)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부모님이랑 일곱남매가 큰과수원에서 살 때 염소를 키웠다.

칠남매 중  여섯 번째인 덕이가 두 살 터울의 형이랑 염소를 몰고가서 풀을 뜯기곤 했는데

염소를 몰고 나갔다가 이상한 물건을 주워서 돌로 두들기다 폭팔하여 왼쪽 손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여덟 살 때였다.

6,25때 영천,포항전투의 격전지였던 고향에서는 대전차 지뢰를 포함, 알 수도 없는 각종 포탄들이 골짜기에서 흔하게 보였고

중학생 두 명이 폭발사고로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나 보다 두 살 많던 덕이는 그 사고로 인해 국민학교를 한 해 늦게 입합했고

왼손이 불구였지만 못하는 일이 없었으며, 성격 또한 화끈하고 씩씩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 둘씩 고향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고립의 그늘이 쌓여갔다.


그래서였을까

장애에 대한 열등으로 향후 인생 설계에도  벽을 느꼈던 것 같다

펜팔에 집중했고 어떡하든 인연을 만들고자 노력하더니 두 달쯤 지났을 무렵 그 여자가 짠~!하고 나타났다.

수더분하게 생겼고 약간은 연상으로 보였다.


여자가 온 다음 날부터 그 집엔 깨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천장에 가서 밥상과 자잘한 세간들 그리고 그 당시 시골에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조리했는데  석유곤로까지 사 오던 걸 기억한다.

덕이 방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여자는 뜨게질을 했고 덕이는 표정관리 하느라 근엄 해졌고

그땐 들락거리던 나를 아마 웬수로 느꼈을 것이다 

눈치를 느낀 나는 비록 아지트를 뺏기긴 했지만  관망자세로 그쪽으로 가는 횟수를 대폭 줄였다.

매우 축하 할 일이었고, 근 이십 여일간은 꿈 같이 달콤한  덕이의 가불신혼이 이어지는 걸 보았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두 달 후인 추석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채 그녀는 떠났고

추석이 지나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애가 단 덕이가 깻말을 팔아 그녀가 살던 안동으로 두 번씩이나 찾아갔지만 협상안만 제시하고 덕이를 돌려보냈다

이미 호구조사를 했던 그녀는 "촌에서는 몬살겠다. 소와 땅을 팔아 시내에 방을 얻어 살자"했단다

형제들이 모두 떠나고 연세 드신 부모님을 덕이 혼자 봉양하고 살던 때였다.

얼마간의 땅뙤기와 키우던 소는 부모님 노후 밑천이며 덕이가 살아 갈 근간인데

꼴랑 그걸 노리고 어찌해 보겠다던 그녀는 안동역 근처에서 직업여성으로 살아온 여자였음을 덕이가 나한테만 알려 준 펙트였다.


덕이의 근심은 깊어갔다.

그야말로 신파극이었다. 부모를 버리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부모님이 ...


말 수가 줄었고  그간 모았던 편지는 날짜순으로 묶음해서 교전을 독파하듯 맨날 그것만 읽고 또 읽었다.

너덜해진 편짓글에 군데군데 밑줄을 치고 나한테 보이며 택도 없는 의미를 부여 하는 등 이상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단이 일어나기 까지는 시작에서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늦가을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친구 재규와 셋이서 심심풀이 고스톱을 치는데

목단 피를 국화 피로 먹어가는둥 헛갈려하다가 갑자기 화투를 놓고 일어섰다.

"나가 봐야겠다. 형사가 이리로 오고있다."

충격을 먹어선 지 그 뒷일은 기억이 잘 나지않는데 

밤새 오리길 신작로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식구와 동네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밤이었다.


아주 폭력적으로 미쳐버렸다.

아래 위를 상실하고 접근하면 주먹부터 날렸다.

급기야 대구에 살던 큰형이 달려왔고

덕이를 대구로 데려갔다

일 주일쯤 후에 덕이는 다시 돌아왔는데 눈두덩이는 시퍼렇게 붓고 멍들어 있었다.

시선은 바닥을 향했고 사람을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 상태로 열흘쯤 집에 더 머물렀는데

 어느날 곱게 말을 붙여 마실 나들이를 권했는데 순순히 응했다

동구밖을 나란히 걷다가 느닷없이 주먹이 날아오는데 간신히 피했지만 등골이 서늘했던게 또렷하다

살살 달래서 집으로 데려다 주었는데 그게 덕이와 함께 했던 마지막 모습이이었다.

다시 대구로...


나는 직장으로 복귀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고  이듬해 설날 고향에 내려갔더니

덕이와 부모님은 대구로 이사를 하였고 빈 집만 덩그라니 남아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이따금식 들르는 고향에서 덕이 소식을 물으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연고가 남아있지 않아 그들이 떠난 후 아예 소식을 모른다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덕이도 죽었다는 소문만 나돌았다.


올해 4월 초 고향모임이 있어서 갔더니

친구 하나가  알음알음으로 성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고 했다.

성자는 덕이의 누이동생이다


5월7일 11시 대구 검단동의 모정신병원

보호자 허락 없이는 만날 수 없다하여  병원 로비에서 성자를 만났다

성자도 오랜만에 면회를 온 듯 먹거리와 카네이션을 한아름 들고 왔다. 그녀도 소싯적에 보고 사십 년을 훌쩍 지나서 만나게 되었는데

옛날 모습은 많이 남았지만 머리가 백발이다.


2층 면회실

병원 관계자가 접견 자리를 안내했고  얼마 후 덕이가 들어왔다.

38 년만의 만남

 네 번의 강산이 바뀌고 그를 만났다.

 덕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설명을 듣고 나서야 "니가 웬일이고? "반문하며

고맙고 반갑다며 손을 꼭 잡고 한참동안 놔 주질 않았다

정신은 맑게 돌아와 있는 듯 보였지만 환자복을 입은 덕이는  백발에 치아가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외관상 80대 할배로 변해 있었고

당뇨가 심해 십센티 앞의 물체만 확인할 수 있는 시력만 남아있었다.

병원밥이 질린다며 성자가 준비해 온 참외와 전복죽을 게걸스럽게 먹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슬프던지..


꼭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고 설레임으로 달려왔는데 변해도 너무 변해 있었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는데 참아내느라 힘들었다.

고향소식, 친구들의 근황 들려주고

 다시 오마 약속하고 꼭 안아 주고.. 

돌아서서 병동으로 들어가는 축 처진 어깨의 뒷모습은 아직도 짠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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