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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 ./♡ 사는 동안

마늘을 까다가..

by 삼매* 2007. 3. 31.

마누라는 바쁘다는 핑계로 도무지 반찬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애들 다 내 보내고 달랑 두식구만 남아있고, 만만한 남편이라 그런지 대충먹고 살자는식이다.

애들이 없다보니 치닥거리가 줄어 편하긴 하지만, 그 틈에 마누라가 소홀해져감을   한두번 느끼는게 아니다. 생선 한토막만 있었으면.. 물김치라도 좀 담가두었으면.. 일일이 주문을 해도 그저 만만디로 버티고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고 만다. 집에서 김치 담가 먹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작년늦가을에 큰댁에서 날라온 김장김치가 시어터져 부침개나, 어쩌다 라면 먹을때나 겨우 먹을정도다.

아무리 맛없고,신김치라도 라면앞에서는 용서가 되는게 김치의 마지막 매력인거 같다.

 

어제저녁에는 무슨맘이 동했는지 서너번의 물김치 노래를 이제야 알아들었는지, 열무와 얼갈이배추 한단씩을 사다가 부엌바닥 냉장고앞에 툭~ 던져 놓은것을 보았다.

오늘은 토요일.  늦은아침을 먹으면서 '내가 마늘 까 줄테니 얼른 물김치담자.' 했다.

또 피곤하고 바쁘다는핑계. 나중에 보자는 식이다. 자연히 밥상머리에서 티격태격..

비도 내리는 우중충한날씨. 마누라께서는 이불을 뒤집어 쓰시고 긴잠에 들어가셨다.

저녁이 다 되서야 기침하신 마누라가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며 반쯤 시든 김치꺼리의 2/3 정도를 쓰레기통에 쳐박고, 한줌이나 되는 김치꺼리에 소금을 뿌려놓았다. 이제라도 김치담글 준비를 해둔것이다.

 

지난 신정때던가?

처가집에 들렀을때 장모님께서 상품마늘 한접을 차에 실어주셨다.

깐마늘도 큼지막한 통에 가득 담아주셔서  여태까지 그것만 먹다보니  한접이나 되는 마늘을 부엌구석에 쳐박아두고 잊고 살았다.

며칠전에  우연히 보게된 마늘의 상태를 대충 짐작은 하고있었지만 과연 몇알을 건질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고 있던 터 였다.

 

장모님이 사위에게 주겠다고 상품을골라 사 주셨던 마늘인데.

폭삭 썩혀서 버리게 됐다는점에서 죄송스런 마음부터 먼저 들었다.

물론 갈무리를 소홀히 한 마누라에게 일차책임이 있지만서도..

 

아뭏든 부엌바닥에 담배 꼬나물고 쭈그리고 앉아서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말이 까는거지 한접마늘을 순식간에 수습하고나니 국수사발로 한사발도 안되게 건졌다.

 

마늘을 수습(?)하면서 보았다.

온전한 톨은 거의 없고, 두톨건너 한알정도만 건질수 있었는데 완전히 썩거나, 말라버린 톨이 있는가하면,  8에서 13조각까지 구성된 마늘 중 한조각 정도는 그래도 건재한게 있었던것이다. 한톨중에서 마지막 한조각만 건재하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좀더 방치한다면 마지막 조각까지 말라버리겠지만, 다같이 썩지않고 한조각의 마늘만이라도 번식을 위해 최후의 발악을 하며 남겨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섭리가 어쩌면 잔인하리만치 모질고 독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내일 저녁쯤에는 상전부인께서 담가주신 물김치맛을 볼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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